스냅에서의 석달

한국에서 중고교를 마친 사람이라면 다들 공감하겠지만, 필자의 고교 시절은 정말 공부 이외에는 전혀 다른 선택지라고는 없는 무미건조한 시절이었다. 아침 자율학습에서 시작해 수업, 야간 자율학습, 그리고 독서실로 이어지는 그 생활을 몇 년을 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믿기지 않는다.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땐 다들 그렇게 살았다.

하지만 그때는 지긋지긋 했던 고교시절이 서른 중반이 된 지금은 가끔 그리울 때가 있다. 우리나라의 입시제도를 미화하려고 의도는 추호도 없지만 한가지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 몰두하는 경험, 그리고 그 노력의 결과를 좋든 나쁘든 성적이라는 결과물로 확인하고 다시 시작하는 과정에서 많이 배우고 성장한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어른이 되서는 뭔가에 그렇게까지 집중하기도 힘들고 노력한 결과가 바로바로 보이지도 않으니 말이다.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필자가 스냅에서 보낸 석달은 마치 고등학교에 다시 입학한 수험생이 된 기분이었다. 밤낮, 주말도 없이 열심히 일하는 동료들과 보조를 맞추고, 숨가쁜 스케줄과 쏟아지는 이메일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깨어있는 시간을 거의 업무에 투자해야 했다. 그러고도 항상 뭔가 부족한 기분이 든다면 지나친 걱정일까. 이렇게 기진 것을 다 털어넣어 일하는 경험은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원 이후 처음이었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누가 시켜서 이렇게 한 것도 아니고, 그 과정이 고통스럽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 팀에는 스냅챗에 검색 기능을 런치해야 한다는 분명하고 가치있는 목표가 있었으며, 이런 공통의 목표를 항하여 모두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마치 기계의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듯 이런 환경에서 대충 시간만 때우려고 했다면 오히려 괴로웠을 갓이다.

이렇게 모두가 합심해서 노력할 끝에 우리 팀은 몇 주 전 스냅챗의 스토리 검색 기능은 미국 전역에 성공적으로 런칭할 수 있었다. 스토리 검색은 전세계의 스냅챗 사용자들이 공유한 스냅을 흥미있는 스토리로 만들어 이를 검색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기능으로, 기존의 메신저 서비스에 더하여 사진 및 비디오 중심의 컨텐츠 플랫폼으로 발돋음하려는 스냅의 중요한 디딤돌이다. 검색에 이어 지난주에 파트너 팀에서 런칭한 스냅 맵 역시 이런 컨텐츠 전략의 일환이다.

필자는 대학원 시절부터 검색 관련 일을 했지만, 소셜 네트워크 상에서 이미지 및 비디오 컨텐츠를 대상으로 하는 스냅챗의 스토리 검색은 상당히 다른 문제다. 사용자들의 검색 의도, 질의 패턴, 그리고 컨텐츠의 성격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원하는 정보를 효율적으로 찾아주어야 하는 검색엔진의 기본에 충실하면서, 흥미있는 컨텐츠를 원하는 스냅챗 사용자들의 특성을 모두 만족시켜야 하는 것이다. 또한 문서가 아닌 이미지와 비디오에서 검색에 필요한 다양한 속성을 뽑아낼 수 있어야 한다.

게다가 검색 대상인 웹 문서가 이미 주어진 웹 검색과 달리 스냅챗의 검색은 ‘문서’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검색 대상이 되는 스토리 자체를 사용자들이 공유한 스냅을 바탕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비슷한 주제 및 시공간에서 찍힌 스냅을 일관성있는 스토리로 만드는 과정이 추가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분류, 군집화, 필터링 등 다양한 머신러닝 기법이 사용되며, 이 과정이 꾸준히 개선되기 위해서는 대한 엄밀한 평가 기법이 필요한데, 이 부분이 현재 필자의 주된 업무 영역이다.

연구자와 개발자의 구분의 비교적 뚜렸했던 MS에 비해, 필자가 직접 완성도나 높은 코드를 짜서 보여줘야 한다는 것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평가 지표 및 데이터 분석 결과를 리포트나 프리젠테이션 형태로 다른 팀에게 전달했던 예전 직장에서와 달리, 실제 지표 계산에 필요한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많은 부분 직접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원래 글쓰기던 코딩이던 뭔가 만들는 행위를 즐기는 편이라 별로 힘들지는 않았다. 덕분에 문서가 아닌 코드로 말하는 개발자의 일상에도 익숙해지고 있다.

스냅에서의 세 달은 분명 필자의 인생에서 가장 편안한 시기는 아니었지만 돌이켜보면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어느 날 거울에서 키가 훌쩍 큰 자신을 발견한 십대의 기분이랄까. 작년 창발의1 컨퍼런스 키노트에서 윤필구님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도전을 강조하며 ‘스스로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을 종종 해야 성장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시애틀 생활에 머물렀다면 지금의 만족감은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애틀에서 LA로, 그리고 최근에 검색팀이 있는 SF오피스로 옮기면서 생활 면에서도 적응해야 할 부분이 많았는데, IT의 중심지인 실리콘벨리에서의 생활도 기대가 된다. 당분간 회사일로 바쁜데다 몇주 전에는 아내가 귀여운 딸아이를 출산해서 정신이 없었지만, 앞으로 이 지역에 계시는 IT 종사자 분들과도 폭넓게 교류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Snap의 LA / SF / 시애틀 오피스에서는 열정과 실력을 갖춘 데이터 과학자 및 개발자를 채용하고 있으니 혹시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필자의 메일(lifidea@gmail.com)로 연락 바란다.

[1]: 시애틀의 한인 IT 종사자들의 모임: http://www.changbal.com/